남북 미사일 개발 경쟁 032022 MAGAZINE 남은 정밀·정확도, 북은 추진체(로켓) 기술 앞선다⊙ 한국은 미국 미사일(나이키)북한은 소련 미사일(스커드)역 설계에서 미사일 개발 ⊙ 한국 세계 7번째로 지대지 탄도 미사일 개발···미국과 미사일 지침을 맺고 스스로 족쇄를 채우는 ⊙ 미사일 개발을 중단한 전두환(정·두한)전 대통령, 아웅산 테러 후의 개발 재개 ⊙ 김정은(김·정은 국방 종합 대학, 지난해의 극초음속 미사일 학부 신설 ⊙ 김정은(김·정은)미국의 대북 강압 정책에 대항하면서 핵과 미사일로 대미”반대 강압”정책을 펴고 ⊙ 한국 국방 연구원, 북극 초음속 미사일 개발에 중국과 러시아가 관여⊙ 한국은 미국 미사일(나이키), 북한은 소련 미사일(스커드) 역설계로 미사일 개발⊙한국, 세계 7번째로 지대지 탄도미사일 개발…미국과 미사일 지침 맺고 스스로 족쇄를 채운다⊙미사일 개발 중단한 전두환 전 대통령, 아웅산 테러 이후 개발 재개⊙김정은 국방종합대, 지난해 극초음속미사일학부 신설⊙김정은 미국의 대북 강압정책에 맞서 핵과 미사일로 대미 ‘역강압’ 정책 펴기⊙한국국방연구원, 북극 초음속미사일 개발에 중국과 러시아가 관여한다.북한이 2020년 10월 10일 새 ICBM과 11축(두바퀴 22개)이동식 발사 차량(TEL)을 공개했다. 사진=뉴 시스 광학, 공기 역학 구조 역학, 동역학, 열역학, 유체 역학, 제어 공학, 재료 역학 체계 공학, 추진 공학, 화학 공학, 항공 우주 공학, 회로 설계, 소프트웨어 설계, 성능 분석···)미사일 개발에 필요한 기술 분야의 일부를 나열했다. 물리·화학 같은 기초 과학을 바탕으로 첨단 공학 기술이 필요하다. 한 나라의 미사일 수준에 대해서”과학 기술과 경제력, 국방력을 종합한 결정체”이라고도 한다. 경제력 세계 110위권 재래식 전력 20위권의 북한은 올해 1월 1개월 간 미사일 시험 발사를 7회 열리며 총 11발을 발사했다. 극초음속 미사일(시속 마하 5이상)의 IRBM(Intermediate Range Ballistic Missile중거리 탄도 미사일 사거리 1000~5000km), ICBM(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대륙 간 탄도 미사일 사거리 5500km이상)등 종류도 다양했다. 올해 1월 5일 북한이 극초음속 미사일(마하 6)을 발사하자 한국의 합동 참모 본부는 ” 극초음속 미사일이 아닌 “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북한은 관영 조선 중앙 통신을 통해서 사거리 700킬로의 극초음속 미사일을 발사한 사실을 공개하고”(미사일이)표적에 명중했다”고 밝혔다. 6일 만인 1월 11일에는 먼저 발사한 미사일보다 약 2배 빠른 마하 10㎞에 이르는 미사일을 발사했다. 마하(Mach·음속)는 시속 약 1250km에 이른다. 합동 참모 본부는 이날”한국군은 이번 발사체에 대해서 탐지 및 요격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라고 말했지만 전문가들은 극초음속 미사일은 요격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북한이 핵 탄두를 장착한 극초음속 미사일을 수도권에 발사하면 도달까지 1분도 안 걸리고 대비할 시간이 거의 없다. 이 때문에 국민의 력윤 석열 후보는 이날” 극초음속 미사일에 대해서는 선제 타격이 유일한 해결책”고 말했다. 북한 미사일 발사, 핵 무력 고도화의 의미서울 용산구 전쟁 기념관에 전시된 스커드 미사일(왼쪽)와 나이키 미사일 모형(오른쪽)스커드 미사일은 연필처럼 나이키 미사일은 이등변 삼각형처럼 보인다. 사진=뉴시스/AP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스커드 미사일(왼쪽)과 나이키 미사일 모형(오른쪽). 스커드 미사일은 연필처럼, 나이키 미사일은 이등변 삼각형처럼 보인다. 사진=뉴시스/AP백곰 시험발사 성공 다음날인 1978년 9월 27일자 조선일보 1면. 사진=조선DB1978년 9월 26일 충남 태안시(충청 남도·테앙시)안흥 종합 시험장에서 국산 최초의 지대지 미사일”백곰”이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 이로써 한국은 세계 7번째의 지대지 미사일 보유국이 됐다. 이 자리에는 박정희(박·정희 대통령도 참석했다. 당시 ADD는 보안 때문에 위장 사업 이름을 부여했다. 미사일을 개발하던 연구원이 눈이 많이 내리는 날에 눈 덮인 채 걸어가는 모습이 마치 북극곰 같다며”백곰”이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당시 미국은 한국이 미사일을 개발한 뒤 핵 탄두를 장착할 수 있다고 의심했다. 핵무기를 개발하는 나라는 대부분이 지대지 미사일을 함께 개발하는 추세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도 박·정희 정권처럼 핵·미사일 개발을 병행 추진했지만 핵 개발을 포기하는 미사일만 성과를 냈다. 핵 개발 의혹을 받은 이란과 핵무기를 보유하고 포기한 남 아프리카 공화국도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병행했다. 공군 사관 학교의 엄정 우에 당당히·종식)교수가 발표한 박사 학위 논문(『 카터 정권 시대의 대한 무기 이전 정책의 변용 』)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군수 산업을 담당하는 오 원철(오·우오은쵸루)청와대 제2경제 수석 비서관에 1971년 11월 10일 핵무기 개발을 그 해 12월 26일에는 지대지 유도탄을 개발하도록 지시했다. 〈 한미 미사일 양해 각서 〉 한국은 미국의 의구심을 해소하기 위해서 백곰 개발 이듬해 1979년에 “한미 미사일 양해 각서”를 체결했다. 당시 한국 정부는 미국에서 미사일 부품과 기술 지원을 받으면서”사거리 180km이상, 탑재 중량 500kg을 넘는 로켓은 개발하거나 획득하지 않는다”겠다는 각서를 썼다. 한국 스스로 미사일 개발에 족쇄를 채우는 것이다. 미국이 탄두 중량을 500kg이하로 제한한 이유는 백곰에 핵 탄두를 장착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핵 미사일에 부착하는 소형화된 핵 탄두는 중량이 통상 500kg이상이기 때문이다. 이 양해 각서는 아무런 법적 효력도 없지만”한미 미사일 지침”이란 용어로 바뀐 채 2001·2012·2017년 등 3차례 개정을 거쳤다. 2017년 11월 문재인 정부는 미사일 탄두 중량 제한을 완전히 풀”2017개정 미사일 지침”을 채택했다. 이 때문에 한국은 사거리 800킬로의 미사일도 탄두 중량에 제한을 받지 않았다. 신군부 집권 후 미사일 개발 폐기2017년 9월 28일 평택 해군 제2함대에서 열린 건군 67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 공군 사관생도대의 뒤에 미사일 발사대가 배치되고 있다. 왼쪽은 지대지 미사일”현무-2”, 오른쪽은 순항 미사일”현무-3″발사대이다. 사진=뉴시스한국은 백곰 개발 성공 이후 탄도탄 개발을 해왔지만 1년 후에 박정희(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된 뒤 미사일 개발 계획은 중단된다. 1980년 집권한 신군부는 부족한 정치적 정통성과 정당성을 만회하기 때문에 미국이 부담하는 미사일 개발 사업을 폐기했다. 이 때문에 ADD연구 인력의 30%인 약 900명이 신군부 집권 후 ADD을 떠나야 했다. 제5공은 국산 기술로 개발한 백곰을 “나이키에 페인트를 칠하다만 가짜 유도탄”으로 비하하기도 했다. 실제로는 항법 장치(유도 장치)를 제외한 90%정도는 국산화한 상태였다. 그러나 1983년 아웅산 테러가 발생하자 전두환(정·두한)정부는 미사일 개발을 재개한다. 이렇게 탄생한 미사일이 북방을 수호한다는 “현무”이다. 현무는 그 후, 지대지 유도탄 현무-2와 순항 미사일 현무-3에서 개발되어 현재는 현무-4까지 개발된 상태이다. 현무-4는 SLBM의 형태에서도 개발에 성공했다고 한다. 북한과 달리 한국은 보유하고 있는 탄도 미사일에 대한 정확한 제원이 공개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미사일의 정확도와 정밀성은 우리가 앞서고 있지만, 추진 체(로켓)기술은 북한이 앞선다는 평가한다. 한국이 동맹국의 압력으로 스스로 미사일 주권을 제약하는 사이 북한은 국가 역량을 결집하고 미사일 개발에 주력했다. 북한은 국방 과학원이 앞장 서서 미사일 개발에 나섰다. 해군 중령 출신의 북한 대학원 대학교 김·동요프 교수는 지난해 12월 8일 함께 민주당이·동 민 의원이 주최한 한 세미나에서 “북한 국방 과학원의 실체와 국방 과학 수준”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진둥 � Y(김·동요프)교수에 따르면 북한은 1964년 6월 29일 당시 민족 보위부(현 인민 무력부 국방부에 해당)무기국 산하 130정밀 기계 연구소를 모체로 1962년 국방 경제 병진 노선 채택을 받아 국방 공업 집중 육성을 목적으로 하고 무기국에 산발적으로 배속되던 연구소를 통합하고 국방 과학원을 설립했다. 북한은 1952년 12월 첫 국방 과학 연구 기관인 정밀 연구소를 설립하고 한국 전쟁 후 17호 연구소(화약 연구소)등 군종, 병종에 의한 연구소를 조직했다. 김일성(김·일성)주석은 전쟁을 치르면서 옛 소련제 무기가 북한 군인의 체형에 맞지 않는 것과 군수 부문의 독립 없이는 소련에 계속 의존해야 한다는 점을 문제 삼아 북한식 군수 공업의 국산화를 진행했다. 1963년에는 미사일 개발을 목표로 국방 대학도 만들었다. “강계 공업 대학””평양 공업 대학”등으로 불리며 현재는 “국방 종합 대학”에 개칭되었다. 2016년에 김정은이 현지 지도를 찾은 뒤에는 교명을 “김정은 국방 종합 대학”으로 바꿨다. 이는 김정은이 미사일을 그다지 중요시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김정은 국방 종합 대학2016년 9월 13일 북한의 “노동 신문”은 김정은이 국방 종합 대학을 현지 지도했다고 밝혔다. 뒤로 김일성·김정일 동상이 있다. 사진=뉴시스조선 중앙 통신은 2016년 6월 13일 보도에서 김정은이 국방 종합 대학을 방문했다고 공개했다. 정확한 방문 시기는 공개되지 않았다. 조선 중앙 통신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국방 종합 대학을 현지 지도하고”국방 종합 대학의 기본 임무는 동방의 핵 강국 군사 최강국이며 선군 조선의 지위를 더 튼튼히 하고 빛내어 나가자 기둥감, 주체가 철저히 된 학술형 인재, 실천형 인재를 더 많이 더 훌륭하게 키우는 것이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김정은 씨는 “(국방 종합 대학은 제가)가장 애착을 갖고 중시하는 대학 중 하나”이라며”인민 군대의 무장 장비 현대화를 실현하고 첨단 군사 장비를 개발하는데 절실하게 필요한 과학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국방 과학 기술 분야를 개척하는 것에서도 많은 성과를 이뤘다”고 전했다. 2020년 10월 10일 조선 중앙 통신은 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을 보도하는 ” 수많은 국방 과학 기술 인재를 배출한 김정은 국방 종합 대학 종대에 이어조선 인민군 사회 안전 군 각급 군사 학교 종대가 보무 당당히 지나갔다”고 보도했다. 국방 대학은 김정은의 이름이 오르기 전까지는 재학생이 3000~4000명 수준이었지만 개칭 후에는 학과가 10개 이상으로 늘어나면서 학생 수도 증가했다는 증언이 있다. 2021년 3월 31일”데일리 NK”에 따르면 북한은 4월의 개학을 앞두고” 극초음속 미사일”관련 학부를 신설했다고 한다. 진둥 � Y(김·동요프)교수에 따르면 북한은 연구 인력 보강을 위해서 동유럽권 유학생을 집중 배치하거나 신규 연구 인재 확보 차원에서 김책 공업 종합 대학(김 공과 대학)출신의 졸업생 전원을 국방 과학원에 배치하기도 했다. 1970년대 초” 제2경제 위원회”가 조직되자 국방 과학원은 제2경제 위원회 산하 조직으로 바뀐 비밀 보장이라는 명목으로 명칭도 ” 제2자연 과학원”에 개칭했다. 북한에는 크게 인민 경제라고 불리는 일반 경제와 제2경제로 불리는 군수 경제가 있다. 제2경제 위원회는 북한 군수 경제를 총괄하는 기관에서 모든 군수 제품 계획·생산·분배 및 대외 무역을 관장한다. 1978년 9월 한국이 지대지 미사일의 발사에 성공하자 북한은 1979년 김정일(김·국방 위원장의 지시에 따른 국방 과학원은 제2경제 위원회와 동격으로 지위가 향상했다. 김·동요프 교수에 따르면 김정일은 제2자연 과학원(국방 과학원)이 제2경제 위 산하에 있는 것을 보고”국방 과학 연구 사업을 선행시켜야 군수 건설이 잘 된다. 국방 과학원을 선두 마차에 세워야 한다”라고 언급했다고 한다. 김일성 종합 대학·김 책 공대 출신으로 군수 공업 육성 후 2000년대에 들어와서 제2자연 과학원은 조선 노동당 군수 공업부 산하에 이동해 2014년에 명칭을 다시 국방 과학원으로 변경했다. 국방 과학원 산하 연구원들은 모두 군복을 입고 일하고 있다. 대다수는 국방 종합 대학과 룡성 약 전파 공업 대학 졸업생이다. 인민 무력부 산하 미림 자전 대학 졸업생, 김일성(김·일성)종합 대학과 김·책 공대를 비롯한 유수의 대학 출신자가 몰리고 있다. 운영 방식은 한국과 비슷하다. 국방 과학원이 무기를 연구·개발하면 이를 제2경제 위원회가 생산하는 북한 군이 사용하는 체제이다. 국방 과학원 산하에는 평양시 룡성 구역 용추동과 중이동 과학 마을 기지만 10여 연구소 등 60여 연구소가 전국에 산재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166공학 연구소”는 미사일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최대의 연구소이다. 그동안 북한이 연구 개발한 로켓의 대부분은 연구소가 중심이 되고 개발됐다. 과거 소련 붕괴 이후 북한에 망명한 소련 미사일 전문 연구사 약 20명이 근무했다.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무수 단리 로켓 시험 발사장, 태천 시험 사격장, 동창리(통챠은리, 철산)시험 발사장이 모두 국방 과학원 산하에 있다. 김·동요프 교수에 따르면 북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1950~60년대에 외국산 무기를 도입한 뒤 모방 생산 시기를 지나 1970년대에 북한식 무기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는 독자의 성능 개량과 개발을 하는 정도까지 도달했다. 김 교수는 “제재와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지상·해상·항공 분야의 재래식 무기 체계는 물론 핵 미사일 등 비대칭 전력과 관련한 국방 과학 수준은 모방을 넘어 상당한 수준의 독자 개발 능력을 보유했다고 평가하는 “이라고 밝혔다. 이어”전략적 운용(국가 목표 타격용)에서 작전 전술적 운용(군사 목표 타격용)로 확장하고 다양한 사거리의 탄도 미사일을 이용하고 한반도와 인근 지역의 미군 기지는 물론 미국 본토까지 타격 가능한 맞춤형 핵 공격 능력을 보유한 “이라고 말했다. 김·동요프 교수는 “올해는 수중 및 지상 고체 ICBM개발 사업, 원자력 잠수함 및 핵 SLBM보유, 사거리 1만 5000km급 장거리 미사일 개발 능력 확보, 북극성 계열 SLBM발사, 신형 ICBM지상 연소 실험과 제한된 사거리 발사를 진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2022년 4월 15일 태양절(김일성 생일)110주년을 맞아 인공 위성 발사 같은 두드러진 성과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올해 5월로 예정된 한국의 누리호 재발사와 제휴한(행동을 한다)”이라고 밝혔다. 북한 소련제 스커드 미사일의 역 설계에서 미사일 국산화2021년 9월 15일 국방 과학 연구소는 한국 기술로 독자 개발한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이 발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한국군이 독자적 설계하고 건조한 최초의 3000톤 급 잠수함”도산 안창호”에 탑재되며 수중에서 발사된 SLBM. 사진=국방 과학 연구소 제공북한이 미사일 개발을 시작한 시점은 명확하지 않지만 북한도 미국산 나이키·하ー큐리ー즈미사일을 모방해서 백곰을 개발한 방식을 참고했다. 소련이 개발한 스커드 미사일을 역 설계하고”화성”시리즈를 자체 개발한 것이다. 1970년대 북한은 소련과 협력하고 미사일을 개발하기로 했지만 목적을 달성하지 않았다. 1970년대 중반에는 중국과 협력하고 유도탄 개발을 시작한 미사일 개발·협력을 주도한 진석 등 장군이 1978년 문화 대혁명으로 실권을 잃자 북-중 간 미사일 협력도 중단됐다. 북한은 소련이 1961년에 개발에 성공한 뒤 이집트로 수출한 스커드(SCUD)-B형(사거리 300㎞)을 1980년경 반입한 뒤 역 설계하고 지대지 탄도 미사일의 국산화에 성공한다. 북한은 이 미사일을 화성-5형(스커드-B모방형)라고 부른다. 이집트가 북한에 미사일을 공급한 배경에는 1973년 10월에 일어난 제4차 중동 전쟁 당시 북한이 공군 조종사를 이집트에 파병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1984년 자사 생산 화성-5형을 무수 단리에서 시험 발사했다. 총 6기를 발사하고 3기의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 한국이 백곰을 개발한 지 6년 후였다. 1985~1986년에 화성 5호의 양산에 들어가고 1991년경 후속 모델인 화성 6형을 생산할 때까지 매년 50~100대를 만들었다. 북한은 화성-6형을 이란 등 중동 등에 수출했다. 화성-6형은 화성-5형과 외형은 비슷하지만 사거리를 500킬로로 연장했다. 개발은 1987년부터 1988년 사이에 시작됐다. 화성 5형의 탄두부의 무게를 750kg으로 줄이고 소련에서 수입한 특수 금속으로 몸통을 가공하여 비행체의 무게를 줄이고 연료 탱크의 체적을 늘렸다. 화성 6호는 제주도를 포함한 한국 전역을 사거리에 둘 수 있다. 화성-6형은 1990년 6월 첫 시험 발사를 한 뒤 1991년부터 실전 배치했다. 화성-6형에 대해서 소련이 1965년에 개발한 스커드-C형(사거리 500㎞)과 비슷하다고 평가한다. 이 때문에 화성 6호를 “스커드-C개량형”또는”모방형”이라고 부른다. 북한은 화성-6형으로 한반도 전역을 사정권에 넣었지만 일본과 미국을 겨냥한 미사일도 필요했다. 한반도 유사 시 증원될 주일 미군 전력을 사전에 차단하고 미 본토의 미군 병력이 개입하는 것을 억제하는 일본과 미국까지 타격할 수 있는 중장거리 미사일이 필요했다. 장거리 탄도탄과 우주 발사체를 개발할 때 사용하는 접근법은 기존 개발한 로켓 여러개를 묶어 하나의 로켓처럼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른바 크라스타링그(clustering)기술이다. 이에 의한 단거리 미사일 기술을 바탕으로 중거리·장거리 로켓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돈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이런 방식에서는 사정 거리를 1000㎞이상으로 펴지 못 했다. 이미 화성-5형을 기반으로 화성-6형을 개발할 때 사용한 방법은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일본을 타격권으로 하는 이른바”노동 미사일(사거리 1000㎞)”은 스커드 미사일을 단순 구조 변경하고 개발하지 못 했다. 그 대신 크기를 약 1.5배 크는 방법으로 개발을 계속했다. 북한, 러시아의 기술을 활용하고 미사일 개발2020년 10월 10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조선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 등장한 신형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SLBM)”북극성-4A형”. 사진=뉴시스2020년 10월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 등장한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극성-4A형. 사진=뉴시스2017년 6월 23일 ADD 관계자가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성공을 기뻐하고 있다. 이날 문재인대통령도 ADD를 찾았다. 사진=청와대한국군에서 정보를 총괄하는 국방 정보 본부장을 지낸 김 아키라록(김·팬 록)예비역 육군 중장은 북한의 김정은(김·정은) 제1비서가 집권 초기 2013년부터 2017년 11월의 핵 무력 완성 선언 시점까지 핵 투발 수단(미사일)의 고도화에 집중하고 이를 토대로 미국의 강압 정책에 대항한 대미”반대 강압”정책을 펴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정은 정권은 북한의 핵 능력을 무시 또는 과소 평가하는 미국에 대해서, 미국 영토와 미국 국민을 직접 위협하는 종류의 핵무기 투발 수단(ICBM·IRBM·SLBM)를 고도화하고 그 위협을 미국에 강제적으로 인식시킴으로써 대미 협상력을 강화했다”김 아키라록(김·팬 록)예비역 장성이 분석한 틀을 따르면 최근 북한이 미사일 시험 발사 횟수를 늘리는 이유를 크게 두가지 차원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먼저 선대 김정일(김·김정일 시대에 배치한 핵 투발 수단(미사일)이 충분한 시험과 검증을 거치지 않아 투발 수단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을 스스로 방증한다는 점이다. 이어 김정은은 미완의 투발 수단을 개선하고 실전에 사용할 수 있도록 실제 투발 능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다.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조선 노동당 제8회 대회 기념 열병식에 등장한 “북한판 이수 캔들(KN-23)”개량형. 이수 캔들은 요격 회피 기동을 실시하고 현재 미사일 방위 시스템에서 요격하기가 힘들다. 사진=뉴시스북한이 최근 공개한 북한판 이수 캔들(전술 지대지 탄도 미사일 KN23·사거리 500㎞)나 북한판 에이타킴스(KN24·사거리 400㎞)는 핵 투발 수단을 최신화·고도화하려는 북한의 의지와 능력을 나타내고 있다. 현재 한미 군 당국이 보유하고 있는 미사일 방어 시스템에서는 KN23·24를 막을 수 없다. KN-23는 이른바”회피 기동”을 통해서 기존의 요격 시스템을 무력화한다. 북한이 최근 시험 발사한 미사일은 기존의 구형 무기 대신 한국을 공격할 목적이다. 이 때문에 국민의 힘인 석영 요시 대선 후보는 북한의 공격이 임박하면”선제 타격”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민의 힘당 선거 대책 본부의 장 영일(장·영일)수석 부대변인은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각종 미사일을 섞어 발사하면 사실상 막을 방법은 없다. 한결같이 빠른 속도와 요격 회피 기동, 은밀성 등으로 탐지 및 요격이 쉽지 않다. 또 핵 탄두를 장착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 직접적 위협이 된다”며”THAAD(THAAD)의 추가 배치를 비롯한 다층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북한 미사일의 목표는 한국과 미국 일본 한국 국방 연구원 정·경주 연구 위원이 2월 4일 발표한 “북한의 연말 연시 군사 관련 행동과 남은 과제”에서 1월 5일부터 30일까지 7차례 실시한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각각 다른 목적(시험 발사, 전술 운용 적합 평가, 성능 확인, 검수, 임무 수행 훈련 등)을 갖고 이뤄졌다고 분석했다. 한편” 지난 몇년 동안 개발에 힘을 넣고 있는 능력은 전술 핵을 탑재하는 단거리 미사일이다. 이는 한반도와 인접 해역을 사거리로 하기 때문에 이런(미사일)능력 향상을 『 한국을 위협하는 의도가 없는 』다는 북한의 주장은 이율배반적이다”이라고 말했다. 또”그동안 정부는 북한에 일관하고 착한 의도만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한국을(공격)대상으로 한 능력을 집중 개발한다는 것은 북한이 최악의 상황에서도 한국을 먼저 공격할 능력을 키우는 것으로 풀이될 수밖에 없다. 북한이(내 거는 주장과 달리)여전히 한국과 미국을 위협으로 상정한 군사력 건설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경주 연구 위원은 “북한은 제재를 받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에 의한 국경 봉쇄 중에도 무기 체계와 관련된 기술과 장비를 어디선가 공급된 “으로 “직접·간접적으로 관여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국가는 단연 중국과 러시아”이라고 말했다. 또”미사일 개발에 대한 자체 능력을 일정 수준 갖춘 북한이지만 그래도 모든 기술과 장비, 그리고 부품을 북한 내에서 습득할 수 없었을 것이다”며”특히 북한은 핵 보유국 중에서도 보유국이 많지 않은 극초음속 미사일 기술로 가시적 성과를 보였다”고 말했다. 함께 민주당 이재명(이·재명)대선 후보 캠프에서 활동했던 정항 이후(정·반 레)예비역 육군 중장(전 육군 군수 사령관)은 저서 『 북핵 본색 』에서 이같이 밝혔다. “북한은 한국 미국 일본을 선제 공격할 수 있는 잠재적 핵 능력을 갖추는 것을 긴급 전략적 과제로 인식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북한의 행동은 더 대담하게 될 수 있다. 북한은 적절한 시기가 오면 주한 미군 철수를 주장하고 ICBM폐기와 주한 미군 철수를 맞바꾸는 빅딜 제안 등”한반도 통일 전쟁”환경 조성 때문에 핵 무력을 더 공격적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육군 참모 총장을 지낸 남재준(남·재중)전 국정 원장은 육군 총장 시절 일선 장병들이 “주적”개념과 대적관을 혼란하면 2004년 2월 4일 정훈 장교들을 전원 소집하는 정신 교육을 실시했다. 당시 남 전 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김일성이 기습 남침으로 낙동강까지 내려와서 철수하고 1950년 12월 5일 한국 전쟁의 패인을 분석했다. 패배의 이유로는 ▲ 미국의 참전을 막지 못하고 ▲ 미국이 참전해도 낙동강 방어선을 편성하기 전에 조기에 전쟁을 끝내지 못했다는 점을 꼽았다. 김일성은 애치슨 선언에서 미국이 참전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참전할 것으로 예상했다면 전쟁을 일으킬 수 없었을 것이다. 북한은 민족 공조를 통해서 미국(군)을 철수시키거나 북-미 평화 협상·협정을 통해서 미국이 한반도 문제에 간섭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이는 과거 50년간 북한이(한반도의 공산화 때문에)통한을 안고 한번도 변함 없이 이어 온 전략이다”그동안 전문가들은 북한 체제는 오래가지 못한다고 예상했다. 그러나 김일성(김·일성)-김정일-김정은(김·정은)로 이어지는 3대 세습 독재는 시간이 갈수록 공고화되고 있다. 핵과 미사일이라는 두개의 축이 독재자를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할아버지가 70년 전에 남긴 교훈을 발판으로 선대가 못다 이룬 꿈에 점점 다가오고 있다. 지음:이, 경훈 월간 조선 기자 [email protected]⊙